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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길상사의 꽃무릅 / 길상사 이야기 /

국내사진여행

by 새로운 골뱅이 2019. 9. 2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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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사 (吉祥寺)


  


 


 애절한사랑이 사찰로 태어난 길상사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10여년을 따라다니며

시주하겠다고 했지만 끝내는 법정스님도 저버리지 못하고 받아들려 

요정이 사찰로태어난 길상사

김영한 보살은 일제시대 백석시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실존 여주인공이었다고 한다. 

일제말기 종로에서 만나 신혼집을 백석과함께 차리기도한 김영환은 백석을 그리워하 하면서 한평생을 보낸다.

 

대원각이 길상사로 태어나고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며사찰이 되었다.  

  

1997년 '맑고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탈바굼한다.

 

김영한은 평생 백석 생일 7월 1일에는

식사를 하지 않았고, 길상사에 기부된

대원각 재산은 그당시 시가가 1000억 원된다고하니 그당시 강남 34평아파트가 1000만원정도니

지금 시세론 상상을 초월하는 수십조로 상상된다.


 그 많은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물어보니

"천억은 그(백석)의 시 한줄만 못하다"

대답할 정도로 백석을 그리워했다 한다.


자야는 1999년 11월 14일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해를 눈오는 날에 길상사 경내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길상사 경내 길상헌 뒤쪽 언덕에는 김영한 공덕비가 세워졌다.

 


사찰의 창건주였던 법정은 불문에 귀의한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었다.

 

법정스님은 김영한 사후에도 길상사에서 정기법회를 열었고  2010년 3월 11일 법정은 길상사에서 향년 78세(법랍 54세) 로 입적하였다.

 

길상사 개원법회가 열리던 1997년 12월 14일 고 김수환추기경이  법회에 참석해 법정과 함께 나란히 축사를 했고 법정 또한 이에

 이에 대한화답으로 그후  명동성당을찾아 설법을 했다. 

  

길상사 경내에는 공덕주 김영한의 공덕비와 함께있고, 법정의 영정과 그 생전 유품들을 전시한 기념관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

 

또한 경내에

 관음보상석상은 천주교 신자이자 가톨릭예술가

최종태가 건립한 것으로, 혜화동성당의 성모마리아 석상과도 닮았다.

같은작가의 작품으로 유사함을 느낄수 있는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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